장기 위키 · 역사와 비교

장기의 역사

장기가 언제, 어떤 경로로 한국에 들어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확인되는 기록으로는 15세기 궁중에서 장기를 두었고, 17세기에는 판의 크기와 기물의 구성, 이동 방법이 문헌에 구체적으로 적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04년 서울의 실내에서 두 사람이 판으로 보이는 물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사진

1904년 서울 윤웅렬의 집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놀이를 ‘Go-ban 또는 동양의 체스’로 표기합니다. 사진만으로 판과 기물을 장기라고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Underwood & Underwood 발행, 의회도서관 소장·원본 복제, 알려진 출판 제한 없음. 원본 보기

1467년 1월 24일, 세조는 교태전에서 신하들이 두 차례 상희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당시 기록의 주석은 상희를 장기 놀이로 풀이합니다. 노사신이 이준을 이기자 세조는 궁중에 보관하던 환도 한 자루를 내렸습니다. 이 기록은 15세기 조선 궁중에서 장기가 승패를 겨루는 놀이였음을 보여 줍니다.

01 / 역사와 비교

1467년 세조가 지켜본 궁중 장기 대국

『세조실록』은 먼저 한명회와 구치관이 상희를 하고, 이어 노사신과 이준이 상희를 했다고 적었습니다. 노사신이 이기자 세조는 그에게 환도를 내렸고, 한명회와 구치관에게도 각각 환도 한 자루를 주었습니다. 기록의 주석은 상희를 “장기를 두며 노는 놀이”라고 풀이합니다.[1]

이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1467년 궁중에서 두 대국이 열렸고 그 가운데 노사신과 이준의 승부 결과가 기록됐다는 점입니다. 판의 크기나 기물의 움직임은 적혀 있지 않으므로, 당시 규칙이 지금과 완전히 같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1]

02 / 역사와 비교

장기의 정확한 기원과 전래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장기의 시작을 고려 시대로 올려 잡는 설명에는 「예성강곡」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기록에는 바둑이나 장기를 특정하지 않은 棋 한 글자만 있습니다. 대한장기협회는 장기 이야기로 소개하고, 국사편찬위원회의 우리역사넷은 바둑 내기로 풀이합니다. 같은 문장을 두고 해석이 갈리므로, 이 기록만으로 고려 시대에 장기가 있었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3][9][10][11]

차투랑가와 체스·샹치·쇼기에는 장기와 비슷한 기물과 목표가 있습니다. 이런 공통점은 여러 게임의 관계를 연구하는 단서가 되지만, 장기가 어느 게임에서 직접 전해졌는지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는 설명도 가능한 가설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 이동 시기와 경로를 단정할 수 없습니다.[11][13]

03 / 역사와 비교

15세기 기록에 등장한 마와 차

서거정의 『필원잡기』에는 이석형과 김예몽의 장기판이 등장합니다. 종반에 이석형에게는 마 둘, 김예몽에게는 차 하나가 남았습니다. 이석형이 “마가 이긴다”는 뜻으로 말하자 김예몽은 “차가 있다”고 받아쳤고,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기물 이름이 사람의 이름과 겹치는 데서 나온 농담이었습니다.[2][3]

농담이 통하려면 듣는 사람도 마와 차가 장기 기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일화는 조선 전기에 장기 기물의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이 기록될 만큼 장기가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전체 판의 모습과 기물의 이동 방법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2][3]

04 / 역사와 비교

17세기 문헌에 기록된 판과 기물

장유의 문집 『계곡집』에 실린 「상희지」는 장기의 모습을 자세히 적었습니다. 대한장기협회가 옮긴 내용을 보면, 판에는 9×10개의 교차점이 있고 양쪽 끝에는 궁이 머무는 구역이 있습니다. 양쪽은 장 1개·사 2개·차 2개·포 2개·마 2개·상 2개·졸 5개씩 모두 16개 기물을 둡니다.[3][4]

기물의 이동 방법도 적혀 있습니다. 포는 다른 기물을 넘어 움직이고 다른 포를 넘거나 잡지 못합니다. 마와 상은 지나갈 자리가 막히면 움직일 수 없고, 졸은 앞으로 또는 좌우로 한 점 가되 뒤로 물러나지 못합니다. 이 내용은 17세기 문헌에 기록된 규칙이며, 오늘날의 규칙과 모든 세부 조건이 같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닙니다.[3]

05 / 역사와 비교

19세기 말 이후의 그림·사진·장기판

19세기 후반부터는 글뿐 아니라 장기를 두는 사람과 실제 판의 모습도 남습니다. 김준근이 1886년에 그린 〈쟝기두고〉는 세 사람이 낮은 장기판을 둘러싼 장면입니다. 1895년 출간된 『Korean Games』는 이 그림을 석판으로 복제하고, 장기판과 양쪽 16개 기물도 함께 설명했습니다.[5][6]

갓과 한복을 입은 세 사람이 낮은 장기판을 둘러싸고 기물을 살피는 그림
김준근, 〈쟝기두고〉, 1886년 원화를 바탕으로 『Korean Games』에 실린 1895년 석판 복제. Cornell University Library·Internet Archive 디지털본, Public Domain. 원본 보기

1904년 서울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윤웅렬의 집 안에서 두 사람이 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모습이 보입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제목은 이 놀이를 “Go-ban 또는 동양의 체스”라고 적었습니다. 사진만으로 판의 선과 기물을 판별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오늘날의 장기 대국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7]

나뭇결이 남은 짙은 갈색 소나무판에 장기 선과 양쪽 궁성이 새겨진 일제강점기 장기판
일제강점기의 소나무 장기판, 국립중앙박물관 신수9585. 49.7×47.5×8.5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공공누리 제1유형. 앞서 소개한 17세기 기록보다 후대에 제작된 유물입니다. 원본 보기

문헌은 당시 장기에 관해 적힌 내용을 전하고, 김준근의 그림은 장기를 두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남아 있는 후대의 장기판에서는 실제 판의 재료와 형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04년 사진은 실내에서 판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을 보여 주지만, 놀이의 종류까지 단정하는 근거로 쓰기는 어렵습니다.[5][7][8]

06 / 역사와 비교

확인된 기록으로 정리한 장기의 역사

1956년 장기 단체가 만들어진 뒤 여러 단체와 대회가 이어지면서 현대의 경기 문화도 조직화되었습니다. 당시 단체의 이름은 자료에 따라 한국기도원 또는 한국장기기도원으로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이는 장기의 탄생 시점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래 이어진 놀이가 규정과 단체, 대회를 갖춘 종목으로 정리되어 가는 또 하나의 단계입니다.[3][12]

장기의 정확한 시작점은 아직 모릅니다. 다만 15세기에는 궁중 대국과 기물 농담이 기록되었고, 17세기에는 9×10 판과 16개 기물, 주요 이동 방법이 문헌에 나타났습니다. 19세기 말의 장기 그림과 일제강점기의 실물 판은 놀이의 모습과 판의 형태를 보여 줍니다.

  • 1467년: 세조가 지켜본 교태전의 두 상희 대국.
  • 15세기 후반: 마와 차의 이름으로 농담을 나눈 『필원잡기』의 장면.
  • 17세기: 판·기물·이동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은 장유의 「상희지」.
  • 19세기 말~일제강점기: 장기 대국 그림과 실물 장기판.
  • 1956년 이후: 단체와 대회가 이어진 현대 장기 문화.

참고 자료

  1. 조선왕조실록 · 세조 13년 1월 24일1467년 교태전의 두 대국과 노사신에게 환도를 내린 기록 · 확인일: 2026-09-23
  2. 『필원잡기』 권2 원문 스캔 · UC Berkeley조선 전기 장기 대국 일화를 확인하는 원문 · 확인일: 2026-09-22
  3. 대한장기협회 · 장기 소개장기 역사 일화와 「상희지」 인용문을 제공하는 협회 설명 자료 · 확인일: 2026-09-23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계곡집장유의 문집과 간행 시기를 확인한 자료 · 확인일: 2026-09-22
  5. Stewart Culin · Korean Games (1895)19세기 말 한국 장기 설명과 김준근 그림의 석판 복제. Public Domain · 확인일: 2026-09-22
  6. Penn Museum · 쟝기두고(21574U)김준근이 1886년에 그린 원화의 제목·연대·소장 정보를 확인한 자료 · 확인일: 2026-09-22
  7. Library of Congress · A game of “Go-ban,” or oriental chess1904년 서울 실내 사진. 원제에서 놀이를 Go-ban 또는 동양의 체스로 병기. No known restrictions on publication · 확인일: 2026-09-23
  8. 국립중앙박물관 · 장기판(신수9585)일제강점기 소나무 장기판과 공공누리 제1유형 이용 조건 · 확인일: 2026-09-22
  9. 국사편찬위원회 · 고려사 관련 원문예성강곡 일화의 棋 표기 확인 · 확인일: 2026-09-22
  10.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예성강곡 해설같은 일화를 바둑 내기로 풀이한 해설 · 확인일: 2026-09-22
  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장기장기판·기물·역사적 맥락의 보조 근거 · 확인일: 2026-09-22
  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장기협회1956년 이후 장기 단체의 형성과 변천 · 확인일: 2026-09-22
  1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hess: East and West체스류의 기원과 전파를 다룬 연구 자료 · 확인일: 2026-09-22
  14. Creative Commons · Public Domain Mark 1.01895년 도판의 권리 표기 · 확인일: 2026-09-22
  15. 공공누리 · 제1유형국립중앙박물관 장기판 이미지의 출처표시 이용 조건 · 확인일: 2026-09-22